*백종현 선생과 칸트학회 사이의 논쟁이 불행히도 그다지 건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기로 양측은 서로의 번역이 정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부딪쳤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백종현 선생이 처음 제기했던 비판 중 하나는, 번역서라는 것이 다양한 해석에 따라 상이하게 나와있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중에서 일방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일이 불가능한데 왜 "정본"이나 "공인"이라는 표현을 쓰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칸트학회에서도 받아들여서 출판사에 요청해 해당 표현들을 철회했던 것으로 압니다. 더구나 번역어에 대해 양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음에도 어느 한 쪽의 번역어가 일방적으로 강제될 수 없다는 점은 백종현 선생도 칸트학회도 기고문에서 거듭 주장해왔습니다. 그렇게도 과격하게 지면에서 논쟁했던 양측이지만 "정본 번역서나 번역어의 획일화는 있을 수 없다"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루만 관련해서도 학자들 간 번역어 논쟁이 있었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긴 한데, 논쟁에서 투고되었던 글들을 읽을 수 있는 곳을 잘 몰라 관련 논문들을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알고 계시다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그 논쟁에 참여하신 학자분께 간략히 듣기로는, 그 논쟁은 번역서의 정본 인정이나 번역어의 정답을 정하기 위해 벌어졌다기보다는 루만에 대한 양측의 해석 차이에 기인해 일어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분들도 번역서에 '정본'이라는 것이 있음에 동의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원전에 충실"이라는 말에 숨어 책임 있는 번역을 회피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 또 책임 있는 번역이 어떤 번역을 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직역을 하면 자신의 번역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고, 의역을 하면 자신의 번역에 책임을 지는 것인가요? 중대한 가치를 지니는 학술 번역서를 자기 이름으로 내놓는 이상 학자들은 모두 자신의 번역이 틀릴 수 있고 그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이 가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흔히 역자 후기나 서문에 "독자 제현의 질정을 바란다"는 문구는 상례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번역과 관련된 비판이 정당하면 받아들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토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방어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번역개정판을 출간하는 작업도 심심치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점을 인지하면서 번역서를 출간하는 학자들은 직역을 하든 의역을 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번역에 책임을 진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직역이나 일본식 한자어의 차용은 생각보다 철학 텍스트의 어려움에 크게 기여하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애초에 진입장벽은 철학뿐만이 아니라 학문이라는 활동에서 없을 수가 없습니다. 철학 텍스트가 어려운 이유는, 철학자들이 똘똘뭉쳐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 일부러 번역을 어렵게 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다뤄지는 내용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상징자본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학문이라는 상징공간 내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그 공간 내에서 통용되는 규칙과 전통을 익히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대가로 지불하고 진입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문에서 논해야 하는 대상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정교하게 다룰 수가 없고, 따라서 실질적으로 학계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학술적 텍스트들이 모두 이러한 배경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식 한자어를 번역서에서 모두 제거하고 직역을 모두 의역으로 고친다고 해서 어려운 철학 텍스트가 쉬워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일반 독자들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양질의 해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한데 그런 일이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진다고 가정해도, 진입비용을 아예 없애버리는 일은 철학이 전문가 집단을 필요로 할 만큼 복잡한 대상을 다루고 있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철학 연구자들이 배타적 태도를 지닌 카르텔이어서가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생물학, 수학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이것이 "순진한 생각"이고 "상아탑을 보호하려는 이상주의적인 발상"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