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조에 대한 몇 가지 상념

(1) 적어도 내가 김재권의 <심리철학>을 읽었을 때 느낀 기분은, 그 책이 '낡았다'는 점이었다. 내 관점에서, 그 책은 오래 전의 (대중의)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성립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기분은 마음을 말하는 여러 이론들에서도 동일하게 느낀 감정이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때, 마음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다층적으로 구분되어야 할 듯하다.

(2)

(a) 의식의 층위 ; 주관적 통제의 영역

  • 말 그대로, 우리가 의식하면서도, 우리가 그 작용을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추론(reasoning), 회상, 판단(judgement), 몇 가지 상상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듯하다.

(b) 의식의 층위 ; 수동적 통제 불능의 영역

  • 우리가 의식하지만, (a) 영역과 다르게 그 작용을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적어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믿음, 감정, 욕망, 감각 지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c) 비-의식의 층위

  • 애당초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층위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작동하는 영역이다. 여러 암묵적 편향이라던가, 호르몬의 작용, 마약 등의 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화학물들 등등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3)

언어적 전회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학자들은 결국 철학적 탐구가 '언어', 즉 의미론에서 멈출 수 없다 여긴 듯하다. 크리스토퍼 피콕도 결국 지각 등의 내용은 명제의 의미론적 값을 넘어선 정보값이 있다 생각했던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각의 내용을 명제로 환원할 수 없고, 언어를 다루듯 연구할 수도 없는 셈이다.)(가렛 에반스도 언어 철학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비-개념적 심적 내용', 즉 비-명제적 심적 내용을 주장한 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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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구분하는 것의 근거를 어디에 두신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믿음이나 감정 등에 대해서는 정말로 통제불가능한 영역인가에 대해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김재권의 심리철학은 마음의 구체적인 작용이나 양태에 대해 다루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심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사이의 형이상학적 관계, 심리철학 안에서도 Metaphyscics of Mind라고 하는 분야의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전의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성립"했다는 평가가 만일 마음의 다양한 영역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평가라면 글쎄요, 적절한 평가일까 싶습니다. 비록 현재 시점에서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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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저도

라는 단서조항을 붙였습니다. 저희가 의도한다면, (마음이 깃들어있는 물리적 구성물의 한계가 아닌 이상) 추론이나 행위는 곧 바로 일어나는 듯합니다. 만약 감정이나 믿음을 통제할 수 있다면, 적어도 이러한 직접적 의도성의 형태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한다면 간접적인 방식으로 (예컨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물리적으로 회피하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긴 시간을 들이는 방식으로 (예컨대, 어떤 대상을 오래 보았을 때 애착이 생기는 것처럼)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지요.

아마 이정도 (모더레이트한) 견해라면, 그렇게 크게 이견이 없지 않을까요?

(1-1)

구조는 그냥 제 임의로 묶었습니다. 그냥 저는 저렇게 보는 게 무언가 설명하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무래도 제 입장을 설명하기 좋다는 것에 가까운 듯하긴 합니다만, 제 견해가 그렇게 논쟁적인 견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막상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가는 의심이 살짝 들긴 하네요.)

(2)

이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김재권이 주로 다룬 내용은 엄밀히 말하면, 심신관계의 문제였지 마음의 능력을 다루는 것은 아니었지요.
김재권의 책에 '오래전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듯하다는 제 느낌에 대한 단서는 이 글에서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듯합니다. (차라리 '마음을 말하는 여러 이론들'이 타겟이 가깝겠네요. 제가 염두하고 있었던 이론은 여러 행위 이론들이었습니다.)

아마 김재권의 '마음에 대한 형이상학'에서도 조금 오래전이라 느낀 근거가 있다면, 흔히 말하는 embodied cognition과 관련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단어 자체가 논쟁의 여지가 많고 온갖 방식으로 사용되지만, 저 같은 경우 '뇌와 중추신경'을 제외한 더 넓은 신체 내-외부의 물질들이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정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면, 카페인이 체내에 흡수되어서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마음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듯합니다.)

기억에 의존하는지라, 김재권의 책 혹은 견해에 대한 정확한 평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기억 속 김재권의 이론에서 '마음'이라는 것은 제가 생각했던 범위만큼 넓은 형태의 인과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이라는 물리적인 것이 있고 거기에 '심적 속성'이 수반하는 일종의 폐쇄적인 시스템만을 다루지, 이 시스템이 시스템 외부의 것[여러 신경전달물질과 향정신성 물질들 - 이러한 물질을 대사하는 미생물들]과 어떠한 인과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듯합니다.)

(제가 생물학의 철학과 관련해 남긴 이 글도 사실 어느정도 이러한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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