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 관한 아주 흔한 오해 중의 하나는, 비도덕주의를 얘기한 그가 범죄와 비스무리한 것들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니체는 비도덕주의자에다가 힘 상승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옹호하는 관점주의자이기때문에 연쇄살인마, 약쟁이, 알코올중독조차 긍정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에 관한 많은 얘기들이 낭설인것과 마찬가지로 이또한 그렇다. 글의 주제이자 위 얘기의 한 예시인 알코올에 대해, 특히 알코올중독에 대해 니체는 아주 일관되게 부정적이다. 디오니소스가 술의 신이고 니체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디오니소스이지만, 이것이 알코올중독에 대한 긍정을 함축하지 않는다. 니체가 알코올에 부여하는 이미지는 '불쾌함', '악취 풍김'이고 반대급부로 제시하는 이미지는 '청정함'이다. (GM3, 26)
니체가 알코올을 거부하는 이유는 아주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알코올과 대마초는 사람들이 극복한(적어도 체험했던) 문화의 단계로 사람들을 되돌린다. (NF 1887, 11[85])
그에 따르면 알코올은 극복의 대상인 과거의 문화로 돌아가게 하는데, 많은 구절에서 반복되듯이 극복의 대상의 문화는 니체에게 우매함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류의 비판은 기독교비판과도 맞물리는 비판이다.
이 민족(독일)은 거의 천 년 전부터 자의적으로 스스로를 우매하게 만들어왔다: 알코올과 그리스도교라는 유럽의 두 가지 대단한 마약 (중략) (GD 8, 2)
결국 알코올 중독은 정신을 나태하고 우매하게 만들기에 비판의 대상이다. 이에 관한 가장 확실한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도 알코올과 연결되는 이미지는 무능, 축축함, 편안하고 나태함이다.
...무능, 축축함, 편안하고 나태하게 하는 실내용 가운, 얼마나 많은 맥주가 독일 지성에 들어 있는지! 고도의 정신적인 목표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정신의 일차적 본능, 즉 정신의 자기 보존 본능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고 - 맥주를 마시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 배웠다는 젊은이들의 알코올 중독은 어쩌면 그들의 학식이라는 목표 내에서는 의문부호가 아닐 수는 있다. (중략) 그러나 다른 모든 면에서 그것은 문제가 된다 - 맥주가 정신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그 은근한 퇴락을 발견하지 못할 곳이 어디냐 말이다! (ibid.)
위와 같이 알코올 중독은 니체 철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고도의 정신적인 목표에 자신의 삶을 헌신함을 방해하기에 비판받는데, 사실 이런 금욕적 면모는 니체 철학안에 아주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 니체는 부정적 의미에서의 금욕이 아닌 기쁨의 총량의 강화의 추구를 수행하는 자기-규율로서의 '귀족적 금욕' 개념을 받아들인다. (A Milchman, 2007) 따라서 니체가 금욕적 실천을 완전히 거부했다고 상정하면 안되고, 그가 거부한 것은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삶을 평가절하하는 자기-부정적 실천이며, 자기-규율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형태의 금욕적 실천은 긍정했다고 봐야한다.(Keith Ansell-Pearson, 1994)
결국 글 초반부에 언급한 통념이 낭설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알코올 중독이고, 어제도 술을 먹고 기억을 잃어 텍스트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반성하기 위함이다. 이 정신에도 글을 쓰는것을 보면 활자중독까지 있나 보다.
이 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욕적 니체는 제 핵심 연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러한 금욕적 면모, 절제, 자기규율이 동반되어야만 그가 말하는 자기 극복, 자기 변형(self-fashioning)이 가능하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의 기술 혹은 실천이 니체를 개인주의자이면서도 공동체와 화합가능한 철학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 연구중입니다. 오늘은 술병이 나서 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