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적 실재론 - 신유물론에 대한 여러 가지 잡념들

정말 좋은 내용이네요. 여기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대부분 동의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검증할 수 없지만 흥미로운 논의점을 가져다주는 가설"을 만드는 작업의 중요성은 저 역시도 크게 지지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전 글에서도 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 존재론, 신유물론이 자신들을 '형이상학'이라고 인정하는 한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아줄 생각이 있다고도 적었습니다. 그 입장들이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로서, 관점으로서, 비평 방식으로서의 제시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해당 입장들은 자신들을 '형이상학'으로 규정하기 싫어한다는 점이죠. 사변적 실재론이나 객체지향 존재론이나 신유물론은 자신들이 현대철학의 기성 흐름을 극복하였다고 주장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형이상학 담론 장에서 놀기보다는 탈형이상학 담론 장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대결해야 하는 논의가 보편자 실재론과 유명론, 기체 이론과 다발 이론, 시간에 관한 이동 지속 이론과 확장 지속 이론 같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논의가 아니라, 오히려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 라캉의 정신분석학, 푸코의 계보학, 데리다의 해체주의라고 보는 거죠. 한 마디로, 형이상학 담론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형이상학이라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고, 형이상학과 상관 없는 분야의 담론들에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 현재의 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 존재론, 신유물론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그 입장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대철학의 다른 영역을 악의적으로 비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들 이전까지의 모든 철학적 작업이 '인간중심주의'였다는 말도 안 되는 요약과 그 요약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찬동하는 분위기가, 현대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슬려서요. 새로운 형이상학을 주장하고 싶으면 기존 형이상학과의 대결 속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적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그 정당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 입장들이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 없는 다른 이론철학의 영역을 억지로 깎아 내려서 일종의 '선동'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주목을 끄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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