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터다이크와 하버마스
교양 수업에서 유전 공학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에 대해 다루어야 해서 이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책을 이것저것 뒤져보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페터 스로터다이크의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이고, 다른 하나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였습니다.
(1) 슬로터다이크는 휴머니즘을 비판하면서 인간복제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독일에서 소위 '슬로터다이크 논쟁'을 일으켰다고 해서 보았는데, 정작 실제로 읽어보니 생각보다 인간복제나 유전공학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더라고요. 기껏해야 "장기적 발전이 또한 종적 특성들의 유전학적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미래의 인간공학은 명백한 형질 설계로까지 밀고 나갈 것인가? 인류가 종 전체에 걸쳐 탄생 운명론에서 선택적 탄생 및 탄생 이전의 선택으로 방향 전환을 실행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들을 제기할 뿐이고, 그에 대해 슬로터다이크 자신이 명확한 의견을 제시한 것도 아닌데, '슬로터다이크 논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내용이 유전공학과 관련해서 뭔가 재미 있는 주장을 하고 있었으면 수업에서 좀 언급해 보려 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더라고요. 실제로, 슬로터다이크 본인도 후기에서 "몇몇 신문기자들은 이 의문문을 규정문으로 만들었다."라며 불평을 나타내고요. 다만, 민족적 휴머니즘을 '고전'을 매개로 한 인간 '길들이기'로 설명하는 내용이나, 하이데거의 휴머니즘 비판이 다시 존재론적 층위에서 인간에게 특수한 지위를 두고 있다고 지적하는 내용은 꽤 흥미롭긴 하였습니다.
(2) 유전공학에 대한 하버마스의 입장을 다룬 글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네요. 빠르게 훑는 수준으로 읽긴 하였지만, 굉장히 영감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하버마스는 '올바른 삶'의 문제에 대해 기성의 종교나 형이상학에 의존하지 않는 '탈형이상학적 대답'을 찾으려 하는데,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하버마스답게 그 대답을 의사소통의 가능 조건으로부터 제시하더라고요. 착상 전 유전자 검사에 따른 태아 설계가 사회에서 일반화되면, 그렇게 태어난 인격체들이 의사소통에서 과연 자신만의 고유한 근거를 바탕으로 '예'나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주체가 될 수 있겠냐는 거죠. 부모가 아이의 유전자에 간섭하여 그 아이를 수학자나 운동선수 같은 특정한 방향으로 설계할 경우, 그 아이가 의사소통에서 내리는 모든 선택에는 아주 근본적인 층위에서 부모의 '낯선 의도'가 들어가게 되고, 그 의도는 비판적 성찰을 통해서조차 극복할 수 없는 것이 되는데, 이런 상황은 의사소통에서 자유로운 주체들 사이의 합리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 심각하게 문제적이라는 거죠. 여전히 '합리성'이나 '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분들, 그리고 도덕적 판단에서 특정한 종교나 형이상학에 개입하기를 꺼려하는 분들은, 하버마스가 유전 공학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한번 주목해서 보시면 많은 영감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합리성' 자체를 의심스러워 하는 입장이다 보니 하버마스의 입장에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