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철학을 처음 공부하며

1.
이번 학기에 동양 철학(성리학) 세미나에 참여한다. 나는 학부 때부터 지금까지 성리학 넓게는 동양 철학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다. 노자가 누군지 주자가 누군지 도교가 뭔지..

책 <호락논쟁> 을 펼치니 첫 문장이 이렇다:

호락논쟁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본연지성, 미발, 지각, 명덕 등 주자학의 기본 개념들, 즉 마음과 본성 관련 개념 및 이론에 대한 […] 송시열의 후학들 사이에서 펼쳐진 일련의 학술적 논쟁 […] 더 구체적으로는 권상하 문하와 김창협 문하 사이의 대립과 논쟁을 의미한다. (p. 12)

제시된 개념어들 중에 내가 아는 거라곤 '지각', '마음', '본성'이 전부다. 지금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하지만,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공대생이었던 내 눈엔 송시열 씨는 누구고 상하 형이랑 창협이 형은 또 무슨 대단한 형님들인지.. 독일로 쳤을 때, 송시열이 헤겔 급이고, 권상하랑 김창협이 헤겔 좌파랑 헤겔 우파의 수장 급인 건가.. 싶었다.

1장이 <호락논쟁의 정의와 연구사 검토>여서 그냥 넘어가고, 2장 <호락논쟁의 시기 구분과 주요 쟁점>으로 넘어가니 논쟁의 쟁점에 관한 이하의 요약문이 나온다:

논쟁의 논점은 다음 네 가지 문제였다. (1) 심체에 기질을 논할 수 있는가? (2) 편전의 차별이 있는 본성을 본연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3) 성인과 일반인의 명덕은 본래 동일한가? (4) 인간과 동물이 부여받은 오성은 동일한가? (p. 78)

'심체', '기질', '편전', '본연지성', '명덕' 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본성'과 '오성'은 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책을 보다 보니 '오성'이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오성(Verstand; understanding)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동양철학에서 오성은 인의예지신의 존재론적 측면을 일컫는 개념어였다. 그런데 그 뒤에는 '오상'이라는 단어가 나오길래 '오성'의 오타인 줄 알았는데, '오상'이라는 개념어도 있었다. 오상은 인의예지신의 규범적 측면을 일컫는 개념어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다 점프하고 4장 <기본 개념과 명제들>로 갔다.

2.
거기서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다루는 개념은 "리"이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리'란 '우리가 임의로 부여한 것이 아닌 세계와 인간이 지닌 객관적인 질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임의로 부여한 것이 아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자연'의 성격을 지닌다. 나아가 자연적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본성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예컨대, 인간의 리는 인간에게 주어진 본연의 성질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리' 개념은 서양 형이상학에서 논하는 '자연의 결'과 비슷하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연의 결'을 논하는 자들에 의하면 (1) 실재들은 인간과 독립적으로 모종의 질서 혹은 구조를 갖고 있고, (2) 우리의 형이상학은 그 질서 혹은 구조에 따라 실재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한편, 주자학에서는 자연의 본성인 리가 우리에게 모종의 실천적 규범이나 지침 혹은 법칙을 부과한다고 본다. 부과된 것을 '도'라고 부른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은 각각 그 본성의 자연에 따르면 그 일용 사물 사이에서 각각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지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도이다"와 같은 말을 하는 것 같다. (p. 127)

나로선 '우리 인간에게는 주어진 본성이 있다'와 '우리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게 주어진 행위 규범이 있다'가 도대체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전자와 후자를 연결하는 '근거' 혹은 '이유' 조차 '리'라고 말한다. 즉, 리는 "자연법칙, 도덕법칙을 넘어 그 모든 존재가 그를 통해 있게 되는 근거이자 그를 향해 있는 목적 혹은 이유"라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p. 129) 내 인상에는 자기 혼자서 다 하는 무적의 almighty self-referential entity 같아서 허무맹랑하다.

3.
그런데 주자학이 "존재와 당위의 일치는 오직 인간에게서 높은 수준에서 […] 이루어진다"라면서 그 일치를 "자연의 실현"이자 "규범의 실천"이라고, "인간의 실천은 '자연'으로부터 나와서 '당연'을 통해 '자연'에 이른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천일합일'을 "단순한 퇴행적 복귀 혹은 반복이 아니라 고양된 수준에서의 복귀요 상승이다. 그 최종적 수준에 이르는 것이 우리 삶의 이상이다"라며, 자연에 의해 부여된 규범에 대해 성찰하고 성찰한 바를 실천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고양된 수준으로 인간이 자연과의 합치에 이른다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p. 128)

내 생각에는 주자학이 강조하는 이런 자기 복귀적 작업, 단순한 자기 회귀가 아니라 성찰을 통한 '악덕(주자학에서 이 용어를 쓰는지는 모르겠음)'과 같은 것을 제거함으로써 고양된 존재로서 '자연=세계의 객관적 질서'에 부합하게 되는 과정이 헤겔의 자기지양(Aufheben)과 성격의 측면에서 유사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기존의 헤겔 <정신현상학>이 동양철학적인 용어가 첨가된 방식으로 번역된 것인가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동양철학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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