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가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적은 있지만, 대학 강단에서 정식으로 가르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한때 그가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 프랑스의 유명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무척 반가운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제목은 『고교 졸업반을 위한 철학 강의』(Cours de philosophie de terminale). 사르트르가 1942~1943년 파리의 콩도르세 고등학교에서 진행했던 철학 수업의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사르트르가 직접 남긴 강의록이나 누군가가 훗날 정리한 수업 요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제자 모리스 메르메(Maurice Mermet)가 수업 시간에 받아 적은 노트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고 합니다.
메르메는 리옹에서 파리로 올라와 콩도르세 고등학교 졸업반에 들어간 학생이었고, 사르트르 역시 그해 처음으로 이 학교에 부임했다고 합니다. 메르메는 당시 수업 내용을 무려 네 권의 공책에 꼼꼼하게 받아 적었고, 그 노트를 거의 한 세기 동안 간직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 살이 된 메르메가 직접 갈리마르 출판사에 연락하면서, 마침내 이 기록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수업은 논리학, 심리학, 도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시점도 참 의미심장합니다. 독일 점령기의 프랑스, 그리고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를 한창 집필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입니다. 그가 교실에서 진리와 과학, 아름다움과 도덕, 감정과 자유 같은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고, 그것을 열여섯 살 학생들에게 어떤 언어로 설명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사르트르의 새로운 철학책’이라기보다는, 한 시대와 한 스승, 그리고 그 앞에서 열심히 수업 내용을 받아 적던 한 학생의 기록에 더 가까운 책처럼 보입니다.
지금 책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벌써부터 무척 기대가 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중에 독후감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Jean-Paul Sartre, 『Cours de philosophie de terminale pris sous la dictée par son élève Maurice Mermet』(Gallimard,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