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한 논문: 김성수. (2023). 자유의지와 인과적 근원-개입주의 인과론자의 조작 논증 비판과 그 문제점. 철학사상, 89, 319-340.
저자는 개입주의 인과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X = x는 정확히 다음의 경우 Y = y의 인과적 근원이다 [여기서 X = x는 Y = y의 실제 원인 중 하나이다]: X는, Y에 대해 인과적 고정성(invariance)의 관계를 갖는 모든 사전 변수들(prior variables) 중에서, Y와 가장 강한 인과적 고정성을 갖는다.
개입주의 인과론에 따르면, X = x는 정확히 다음의 경우 Y = y의 실제 원인이다7): X의 실제 값이 x이고 Y의 실제 값이 y일 때, Y의 값을 변화시키는 X에 대한 ‘개입(intervention)’이 존재한다. 여기서 X에 대한 개입이 존재한다는 것은, Y가 의존하는 (X 이외의) 모든 변수의 값에 실제 값을 부여한 상태에서,8) Y 값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그리고 그 Y 값의 변화가 단지 X 값의 변화에만 의존하도록 하는) 그런 X 값의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X에 대한 개입으로 X = Y라는 두 변수 간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개입을 통해 이들의 인과 관계를 밝힐 수 없다. 즉, 개입을 통해 설명할 수 있으려면 두 변수 간의 관계가 개입 하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유지가 될 경우 X와 Y의 관계는 그 범위에 한해서 인과적으로 고정적이다.
변수 X와 Y 간의 인과적 고정성 관계 R1은, 정확히 다음의 경우, 다른 변수와 Y 간의 인과적 고정성 관계 R2보다 강하다:
(1) 배경조건 C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R2보다 R1이 X에 대한 더넓은 범위의 개입 하에서 Y의 값을 예측한다.
(2) R2보다 R1이, 배경조건 C 값의 변화에 대해 그 변화의 더 넓은 범위에 걸쳐 Y의 값을 예측한다.
디어리와 나미아스(이하 D&N)에 따르면, 일상적 사례인 도둑질의 경우 행위자의 양립가능주의 행위자 구조(compatibilist agential structure, 이하 CAS)의 작동 결과 값보다 더 강한 인과적 고정성을 갖는 변수가 없으므로, 그 행위의 인과적 근원은 행위자에게 있고 따라서 책임이 있는 행위다. 반면 조작 사례에서는 조작자 다이애나의 결정이 매니의 CAS 결과 값보다 더 강한 인과적 고정성을 갖는다고 D&N은 주장한다. 그 근거는 둘째 조건, 곧 배경조건 변화의 범위다.
다음 반사실적 상황을 보자. 매니의 누나 프래니가 화성에 착륙하며 매니에게 문자를 보낸다고 하면(절도의 배경조건과 관련된 변화다), 이를 본 매니는 누나의 성취에 압도되어 절도를 잊고 가던 길을 갈 것이다. 매니의 CAS는 메시지 도착을 미리 알 수 없어 그 결과 값이 매니의 행위를 잘못 예측하지만, 모든 것을 예견·통제하는 다이애나는 이런 배경조건의 변화에서도 매니의 행위를 정확히 예측한다. 이렇듯 다이애나의 결정은 CAS 결과 값보다 더 넓은 범위의 배경조건에 걸쳐 행위를 예측하므로 더 강한 고정성을 갖는다. 따라서 다이애나가 수정란을 조작하고 매니가 자신의 CAS를 통해 실제로 돈을 훔치는 조작 사례에서, 그 절도의 인과적 근원은 매니가 아니라 다이애나의 결정에 있고, 인과적 근원이 조작자에게 있으므로 D&N에게 매니의 절도는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자유행위가 아니다.
저자는 이런 개입주의 인과론을 비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1) 개입주의 인과론의 정의에 따르면, 매니 행위의 실제 원인인 임의의 원인 A1 = a1에 대해, 다이애나가 그 원인 요인 A1의 값이 a1이 되도록 조작하면 다이애나의 결정이 매니 행위의 인과적 근원이다. (무제약성 전제)
(2) 인적이 드물다는 것이 매니가 도둑질을 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였고, 다이애나가 상황을 조작해 인적이 드물도록 만들어 도둑질을 유도했다면, 우리는 인적이 드물도록 만든 다이애나의 결정이 가장 강력한 인과적 근원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즉, 매니는 이 상황에서 도덕적 책임이 없다.
(3) 하지만 우리는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발견하고 고민한 뒤에 지갑을 훔친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
(4) 따라서 D&N의 개입주의적 인과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러한 비판 논증에 대해 저자는 D&N의 가상적 대응으로, 무제약성 전제에 제약을 걸 수 있다고 가정해본다.
제약성 전제: 다이애나의 조작의 범위를 매니의 CAS 형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로 한정한다.
이 제약성 전제를 제시해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1`) 매니의 CAS 형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조작하는 다이애나의 결정이 매니의 CAS 작동의 결과 값보다 더 강한 인과적 고정성을 갖는다고 가정한다면, 다이애나의 결정은 그 행위의 발생을 예측하지만 CAS 작동의 결과 값은 그렇지 못한 행위가 있을 것이다.
(2`) 그런데 CAS 작동의 결과 값이 예측하지 못하는 행위는 매니의 CAS를 통한 행위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행위는 다이애나가 조작해서 형성한 헹위, 다이애나의 예측 범위에서 벗어날 것이다.
(3`) 따라서 제약의 조건을 만족할 때, 다이애나의 결정이 매니의 CAS 작동의 결과값보다 더 강한 인과적 고정성을 갖는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D&N의 개입주의 인과론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덧붙여서, 개입주의적 인과론이 실패하는 이유를 도덕적 책임에 대한 우리의 직관과 CAS를 기반으로한 인과적 고정성 논제가 자꾸 충돌한다는 점에서 꼽고 싶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형성하는 과정 자체가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하고, 그것을 바꿀수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지, 다이애나가 CAS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인간의 행위를 조작해서가 아니다. 제약성 조건은 CAS 형성 과정에 다이애나가 개입하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CAS에 개입되었는지만 따져도 다이애나가 CAS를 형성하는데 개입했다고 한들 그것이 인과적으로 CAS보다 더 근원적이라고 할 근거도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이애나같은 초월자가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의도했든 아니면 우리가 결정론적 세계하에서 그렇게 하도록 결정됐든 중요한 것은 인간은 실제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바꾸거나 달리할 방법이 없었단 것이다. 가령 다이애나가 아니더라도 악성 바이러스가 난자에 침투해 한 사람의 성격이나 유전적 특징을 결정했다면 그는 자율적 존재인가? 그는 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가? 개입주의적 인과론, 나아가 양립가능론은 이런 도덕적 직관과의 충돌을 비용으로 치러야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