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보고왔습니다

삼수했습니다.
수능판이라는 틀 안에서 막연하게 자신에 대한 기대감만 안고서 달려왔나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성적이 오를거라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몇달 전부터 공황장애로 인한 불안에 대해, 생존을 위해 탐구하다보니 평소에 어렴풋이 관심만 조금 가져왔던 철학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라는 개인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에 대한 더욱 깊은 탐구를 하고 싶습니다.
흔히들 주변에선 간단한걸 굳이 어렵게 말하는게 철학이라고들 하지만, 단순하고 당연함이라는 겉껍질을 벗기면 한없이 나오는 복잡미묘한 이 세상에 대해 흥미를 느낍니다.

대학이 걱정됩니다.
솔직히 인서울도 간당간당해보입니다. 처참합니다. 비참합니다.
그런데다가 철학까지 공부하겠다니. 부모님 얼굴을 뵐 면목이 전혀 없습니다. 저 스스로도 대학을 다니면서도 자기한탄만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안하진 않았습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터디카페를 다녔고, 도착하자마자 스카청소알바를 하고, 쉬더라도 공부를 하기위해 쉬었고 공부를 하기에 쉬는 일이 있도록 하려 했고, 휴대전화 집에 놓고다니며 늘상 아침부터 밤까지 앉아만 있었는데... 결국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공황장애 불안장애로 인해 집중력은 없다싶이 했어서 그런지 결과는 결국 이렇네요.

대학이 어디든 철학과로 진학은 하려곤 합니다.

미래가 걱정됩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이미 세상의 문 앞에 선 지금은 몹시 주저하고 있는 제 모습입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이지만, 의지와는 상충되어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선 여전히 크나큰 무력감을 느낍니다.

한숨으로 소회를 내뿜으며 철학 선배(?)이자 인생 선배님들께 여쭙니다.
철학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어떤 길이 있을지 ...
제 앞길의 선택을 맡기려들고싶진 않지만 대학원?을 제외하면 어떤길이 있는지조차 아는 바가 없어서(아니면 실제로도 없는건지....), 사회에 나가보지 못해 이 세상에 아는 바가 없기에 그냥 다양한 진짜 어른분들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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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늘 당장의 점수에 연연할 때마다 어머니가 인생 길게 보면 지금 걱정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물론 그 작은 것들이 스노우 볼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이란게 또 모르잖습니까. 갠적으론 어머니의 저 말씀과 새옹지마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그래도 맘을 좀 놓게 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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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철학공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을 때, 어떤 분께서 꼭 철학 학부생으로 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은 많다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도 좋은 인서울권 대학에 진학이 어려웠던 시기여서, 철학 학부 이후의 제 진로가 걱정되었기에. 저는 그 말을 듣고 지방에 있는 윤리교육 학부에 진학했습니다.

물론 저는 비슷한 길을 택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굳이 철학학부가 아니더라도 철학을 할 수 있는 길은 많고, 철학 학부에 진학했어도 철학 연구를 더 하지 않고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진로를 택해 가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일단 원서 접수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수능이라는 시험에서 벗어나 시간을 가져보시면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의외로 수능을 따라 흘러가지 않고, 내 의지로 흘러가는 것들이 많고 입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보다 더 가치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wanny님이 견뎌오신 3년에 대해 결과와 상관없이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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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정리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좋은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은 조금 심적으로 여유로워졌네요. 시간적으로도 여유로운 만큼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아 길을 터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